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던가. 오빠는 벡터라고 하겠지. (뼈속 이과)
나는 본의 아니게 결혼 하고 속도가 0으로 줄어버린 것만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다행히 한국에 직업의 흔적을 남겨두고 왔지만... 그것은 그냥 내 마음의 작은 위안이 될 뿐
실상은 자기계발과는 너무나 멀어진 그냥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아이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더 신경쓰며 살아가는 일은 - 여간 자신감을 옭아 먹는 것이 아니다.
마치 내 자신은 제 자리에 서있고 세상에 모든 것들이 나를 훅훅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머리쓰는 것을 좀처럼 가까이 하지 않게 되었고,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것들만 가까이 하게 된다.
SNS나 오락 프로그램, 인터넷의 가십 페이지 등.
이런것만 접하다 보면 내 생각은 짧아지고 경험이 얕아지니 편견도 더 잘 생기고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쉽게 단정하게 된다.
사회생활도 안하다 보니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잘 안들고 그러다 보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어린 아가를 키우는 일만 지나가면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주변 선배 엄마들을 살펴보면, 아이들은 크더라도 결국 부모 품을 벗어나기 전까진 품 안의 자식이라 계속 신경써 주어야 할 것이 산더미같다.
그럼에도 문득 아기가 며칠 단위로 쑥쑥 자라는 것을 살펴보면 여간 신기한게 아니다.
그저께까지 뒤뚱뒤뚱 쓰러지던 아기가 갑자기 일어나서 걸어다니고
뭐를 해달라고 떼를 쓰고...
내 몸에서 만들어낸 것 중에선 가장 신기하고 괜찮은 것 같다.
아마 조금만 더 크면 말도 하고 나름 어엿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겠지.
나랑 오빠랑 싸우면 나름 공정한 척을 하면서 누가 잘못했네라고 판사처럼 판결을 내릴지도...
존재감이 커 가는 아이를 보며 숭고하고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내 자신을 위로해본다.
살도 좀 찌고 머리도 좀 굳었지만 요리도 청소도 전 보다 더 잘해내게 되었고. 아기를 돌보는 스킬도 제법 터득했다.
조금 느리지만 옳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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