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교무부장님의 연락달란 카톡을 받고
장기 휴직자인 나는 괜히 떨리는 마음으로 경건히 연락을 드렸는데
너무나 즐겁게, 알던 그 선생님 모습으로 연락을 받아주셔서
잠시 다시 일하던 그 때 생각이 났다.
첫 직장이었던 그 학교엔 좋은 분이 많았다.
신규교사들이 뭉텅이로 들어오는 신도시의 신설학교는
학교도, 선생도, 학생도 모두 새로운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아주 잠깐 일하고 휴직을 길게 하게 되었다.
사실 미국에 살아요 하거들랑
그리고 남편의 발령으로 전업(주부)으로 있어요 하거들랑
다들 부럽네요라는 시선을 보낸다.
정작 나는 미국에 관심도 없었고, 한국에서의 소박한 삶을 너무 좋아하던 사람이라
이 곳에 와서 꽤나 우울감에 시달렸다.
처음 와서는 외로움에, 출산 후에는 육아의 고됨과 바뀌어 버린 내 삶에..
가끔씩은 하루에 두번씩도 눈물이 팍 터져나오는 육아는 사실 내 체질은 아니다. (할 수 있다면 빨리 외주로 돌리고 싶다)
대부분의 선생님이 전근가고 교직원 명부엔 딱 하나의 아는 이름만 남았는데, 다행히 그 분이 교무부장 선생님으로 계셨다.
어찌나 반가운지... 마치 교무실 옆자리에서 얘기하는 것 마냥...
한국 생각이 났다.
한국이 그리운건지, 거기 있던 젊은 내가 그리운 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
2년전 한국에 갔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다 아는 말로 얘기하고, 광고도 간판도 다 한국어여서
갑자기 멘붕같은게? 왔었다. 정말 게슈탈트 붕괴 이런 느낌이랄까.
갑자기 이방인같이 느껴지고.
한국에 돌아갈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한국에서의 삶을 그려보곤한다.
결론은 무조건 지금보다 더 힘들다...이다.
원래 한국에서의 삶 자체는 그 어떤 나라보다 힘들고(힘들었고. 우리 둘 다에게) 이제 먹여살려야 할 애가 둘이나 더 있다.
우리는 지금 안방 화장실만한 각자의 자취방에서 청춘(대학, 초년생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 그런 집을 구할 수는 없다.
아이의 학군도 생각해야하고 멀찍이 다닐 남편을 생각해 교통도 생각해야 한다.
대학생의 나는 한겨레21을 읽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에 더 공감했다면
지금은 서울 가까이 어느 곳에 우리 아가들 누일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지, 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해야 할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공감한다.
한 통의 전화에 괜시리 한국에서의 빡빡한 삶을 상상해보며
요즘은 다이어트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식이 만으로 3키로가 빠졌다. 어찌나 칼로리의 대 홍수속에 살았는지.
그리고
수능특강을 주문했다.
활자에, 연필 심에 비생산적인 고민은 접어둬야겠다.